서기 2세기
그리스 철학자이자 의사인 가레노스는 현재까지 문서로 남아 있는 한 가장 오래된 뇌해부 실험을 한 사람이다.
그는 생명을 활성화 시키는 정신의 힘이 뇌에 담겨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염소를 대상으로 뇌해부 실험을 했다.

서기 900년.
페르시아는 당시 인류 문명 중 가장 발달된 수학, 천문학,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 중 알 리즈 라는 이름의 의학자는 현재 뇌신경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머리 외상을 입었을 때 뇌의 어느 부분에 압력이 가해지는지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서기 927년.
인도 다르 왕조의 왕이 편두통을 없애기 위해 뇌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왕이 마취 약물로 잠이 든 사이, 의사는 두개골을 절개하고 두통의 원인이었던 뇌종양을 제거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데 양파와 커리 가루를 섞은 약이 사용됐다고 한다.

서기 1163년
유럽 카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는 사람 몸에서 피가 나오는 행위 일체를 해선 안 된다는 포고가 나왔다.
유럽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의료 기술을 습득한 성직자들이 의사 역할을 맡았는데,
교회의 포고를 통해 성직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빠지고 대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발사들이 외과 의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럽은 오랫동안 외과 수술 = 야매 라는 인식이 퍼졌고, 고대 문명부터 쌓아올려진 뇌수술 기술과 지식도 사장된다.

서기 1550년대
성직자들의 의료 현장 이탈은 수없이 많은 외과 수술 지식의 유실로 이어졌다.
성직자 대신 외과 의사 노릇을 하게 된 이발사들은 경험적인 지식을 통해 대증 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것이 바로 사혈 요법이었다
이발사들은 수없이 많은 질환에 사혈 요법을 활용했다.
특히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경우, 머리 속에 박힌 광기의 돌을 사혈을 통해 제거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교회도 이를 지켜 보다 못해 이발사들이 진료하면서 나이프 사용하는 걸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빨을 뽑거나 바늘로 찌르는 행위는 금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자는 줄지 않았다.

서기 18세기
프랑스의 외과의 프랑수아 케네는 개의 대뇌에 쇠못을 박는 실험을 통해
뇌 자체는 고통을 느끼지 못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케네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외과 수술은 병원이 아니라 환자의 자택에서 실행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병원에는 죽음의 공기가 만연해있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기 1908년
영국의 외과의 빅터 호슬리가 두개골을 여는 개두술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뇌수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기 1935년
예일 대학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침팬지의 뇌엽을 제거한 결과, 매우 순종적으로 변화했다는 실험 결과를 내놨다.
포르투갈의 신경과의 안토니오 에가스 모니즈는 1935년 11월 12일, 뇌엽 절제술을 감독해 수술을 성공시켰다.
모니즈는 뇌엽 절제술을 의학적 성과로 인정 받은 끝에 1949년, 노벨 생리학 - 의학상을 수상했다.

